기기를 가졌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기술 문해력의 계급화
디지털 접근성에 대한 기존 논의는 주로 누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갖고 있는가, 누가 와이파이에 접속 가능한가와 같은 물리적 조건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불평등은 기기 보유 여부보다 그것을 얼마나 능숙하게, 비판적으로, 전략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를 흔히 디지털 문해력이라고 부르며, 이는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정보를 찾고, 선별하고, 분석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는 고령자나 저소득층 청소년이 많지만, 이들이 뉴스 앱을 설치하거나 보안 설정을 이해하거나, 클라우드 저장 방식, 온라인 설문 참여, 구글 드라이브 공유, 공공서비스 앱 이용 등을 원활히 수행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이는 기기 자체는 있으나, 기술을 해독하고 응용할 수 있는 ‘문해력’이 결여된 상태로, 물리적 접속은 곧바로 실질적 접근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문해력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급화된다.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인터페이스는 점점 복잡해지는 반면, 사용자는 자기 문해력의 수준에 머무른다. 특히 정보 격차가 경제적 기회 격차로, 그리고 나아가 시민권 격차로 연결될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정부의 지원금 신청이 전자 시스템으로만 가능할 때,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단지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복지의 문턱에서 밀려난다.
이제 디지털 문해력은 새로운 사회적 자본이 되었으며, 디지털 사회의 비공식적 문법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디지털 실어증 상태로 사회적 발언권과 기회를 상실한다.
1. 감정적 소외와 심리적 불안. 모르는 사람이 되는 공포
디지털 격차는 단지 정보 활용의 차이가 아니라, 감정과 자존감의 문제로 확장된다.
디지털 격차는 단지 정보 활용의 차이가 아니라, 감정과 자존감의 문제로 확장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더 이상 도구에 불과하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소통 방식이고, 소속감을 확인하는 수단이며,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정체성의 기반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거나, 새로운 플랫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감정적으로도 배제되었다고 느끼기 쉽다.
특히 이런 심리는 노년층과 디지털 소외계층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종종 내가 뭘 잘 몰라서 젊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감정을 느끼거나, 내가 없는 대화가 온라인 어딘가에서 이루어진다는 배제된 소속감을 경험한다. 이는 사회적 위축감뿐만 아니라 디지털 우울감으로도 이어진다.
또한 기술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유입되는 정보에 대해 판단력을 잃거나, 지나치게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 보내준 링크를 그대로 클릭하거나, 피싱 메일을 열거나, 가짜뉴스를 그대로 믿는 일은 디지털 환경에서 능동적 주체가 되지 못한 이들이 겪는 위험이다. 이것은 단지 정보력 부족이 아니라, 불안 기반 수용이라는 심리적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기술을 모른다는 이유로 무력감을 느끼고, 반복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은 개인의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이러한 감정적 소외감은 기술 격차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자기 검열과 자기 포기를 낳는다. 즉, 디지털 문해력 부족은 단순한 학습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감정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2. 정보 격차가 만드는 기회의 단절. 아는 자만이 신청할 수 있는 사회
디지털 문해력은 어느새 정치적 권리, 경제적 자율성, 사회적 참여의 자격 조건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거의 모든 기회를 정보 기반으로 설계하고 있다. 일자리 공고, 장학금 신청, 복지 제도, 지역 커뮤니티 활동, 건강 보험 혜택 등 대부분의 정보는 인터넷과 앱을 통해 배포된다. 이때 누가 이 정보를 얼마나 빨리, 정확히,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가가 곧 기회의 척도가 된다.
하지만 기술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런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접근해도 읽지 못하거나,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해도 실행하지 못한다. 예컨대, 정부가 청년들에게 디지털로만 신청 가능한 창업 지원금을 제공할 때, 해당 사이트에서 로그인, 본인 인증, 양식 작성, 사업계획서 업로드 등의 절차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결과적으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능력 자체의 격차를 낳는다. 결국 디지털 문해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정보 기반 사회의 게임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처음부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며, 사회 전체의 불평등 순환 고리를 심화시킨다.
이것은 단지 가난한 사람이 기술을 못 쓴다는 문제가 아니다. 정보-이해-실행의 3단계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디지털 역량이 있어야만 사회가 제공하는 기본적 권리조차 행사 가능해지는 구조가 문제다. 그리하여 디지털 문해력은 어느새 정치적 권리, 경제적 자율성, 사회적 참여의 자격 조건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3. 접속만 제공하는 정책의 한계. 디지털 복지의 재정의가 필요한 이유
진정한 디지털 복지란 단지 기기를 지급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정보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역량을 지원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즉, 접속을 넘어서 이해, 참여, 주체성 회복까지 이어지는 디지털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종종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기기 지원, 와이파이 확대, 공공 Wi-Fi 설치 등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접속만 제공할 뿐, 실질적 사용 능력과 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는 매우 부족하다. 이는 마치 책은 나눠주되, 글자는 가르치지 않는 교육 정책과 같다.
실제로 여러 지역에서 시행된 스마트폰 보급 정책이나 디지털 기기 무상 임대 프로그램은 일시적인 물리적 격차 해소에는 기여했으나, 장기적으로는 문해력 격차를 더 키운 사례도 있다. 기기를 받았지만 사용법을 몰라 오히려 두려움만 커졌다는 사례, 보안 문제로 사고를 당한 이후 아예 기기를 꺼두게 된 사례는 디지털 문해력이 제도적 접근권보다 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또한 디지털 교육 역시 문제다. 대부분은 일회성 강의나 앱 사용법 설명에 그치고, 비판적 사고, 보안 의식, 정보 판별 능력 같은 정교한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술 사용 능력뿐 아니라 기술을 자기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이다.
진정한 디지털 복지란 단지 기기를 지급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정보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역량을 지원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즉, 접속을 넘어서 이해, 참여, 주체성 회복까지 이어지는 디지털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