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세상이 만든 취향의 감옥: 알고리즘이 선별하는 인간관계
개인화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 행동 이력, 반응 패턴을 기반으로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단지 동영상이나 뉴스만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선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 미디어, 데이팅 앱, 친구 추천 기능, 포스트 노출 순서 등은 이제 모두 알고리즘의 필터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특정 유형의 사람들과 더 자주, 더 길게 접촉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작용은 무의식적으로 인간관계의 취향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사용자가 자주 반응한 친구의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그 결과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같은 몇 명의 포스트만 접하게 되고, 이는 관계의 유지와 단절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실제로 오래된 친구나 덜 친한 지인의 게시물은 알고리즘이 필요 없다고 간주하면 노출되지 않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 존재 자체를 잊게 된다.
이처럼 알고리즘은 인간관계를 기억의 순위로 재구성하며, 무관심을 보지 못했기 때문으로 위장해준다. 결국 우리는 내가 선택해서 관계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보여준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알고리즘이 줄 수 있는 효율성과 편리함 이면에는, 무의식적 관계 선별의 함정과 취향 왜곡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관계마저 선택된 경험으로 변모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사랑할지도 누구와 거리를 둘지도 점차 스스로 결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1. 이런 사람 좋아하시잖아요? 데이팅 앱과 관계 예측 알고리즘의 조작성
알고리즘 기반 인간관계는 진정한 선택과 우연한 만남의 가능성을 축소시킨다. 취향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알고리즘은 그 만들어짐의 방향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현대인의 연애와 친밀한 관계 형성은 이제 온라인 플랫폼, 특히 데이팅 앱의 알고리즘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이 앱들은 사용자에게 이런 스타일 좋아하시잖아요?라고 말하듯, 특정 얼굴 유형, 언어 스타일, 관심사, 위치 기반 선호에 따라 사람을 추천한다. 이 과정은 선택의 확장을 가장한 선호의 고정화로 이어진다. 반복해서 추천되는 인물 유형은 사용자의 취향을 강화하고 고착화시킨다. 다시 말해, 선택이 선택을 낳는 자기증폭적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가 금발의 사진에 자주 좋아요를 누르거나 스와이프를 오른쪽으로 한다면, 시스템은 곧바로 비슷한 외모의 사람들만 보여준다. 처음에는 우연한 선호였더라도, 반복되는 노출은 그 취향을 정체성처럼 내면화시키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사용자는 점점 다양성을 경험할 기회를 잃고, 특정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만 끌림을 느끼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사회적, 문화적 편향을 그대로 반영하거나, 때로는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인종, 연령, 성별, 경제적 배경에 대한 선호는 종종 무의식적이지만, 알고리즘은 이를 철저히 학습하고 재생산한다. 결국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한다고 반복적으로 보여준 사람들만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알고리즘 기반 인간관계는 진정한 선택과 우연한 만남의 가능성을 축소시킨다. 취향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알고리즘은 그 만들어짐의 방향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2. 상호작용 데이터가 관계의 질을 판단하는 방식: 숫자로 관계를 측정하는 심리
일종의 노출 효과의 알고리즘적 버전으로, 관계의 방향성을 특정 인물에게 집중시키는 경향을 강화한다.
SNS와 메신저 플랫폼은 이제 인간관계를 숫자와 빈도 기반의 지표로 환원한다. 좋아요 수, 댓글 수, DM 응답 속도, 대화 횟수 등은 모두 알고리즘이 관계의 친밀도를 계산하는 변수로 작용하며, 이는 자동으로 콘텐츠 노출 순서나 추천 친구 목록 등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사용자도 이러한 데이터 기반의 상호작용에 정서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나의 게시물에는 좋아요를 자주 누르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게시물엔 자주 반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 행동을 관계의 냉각으로 해석한다. 알고리즘이 단지 상호작용 빈도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조절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알고리즘이 만든 상황을 인간 감정의 결과로 오해하게 된다.
이런 감정적 해석은 ‘보이지 않음’ 자체를 감정의 신호로 바꾼다. 마치 내 글에 반응하지 않은 것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실제로는 중립적이지만, 사용자들은 그 결과를 정서적 친밀도의 척도로 착각하며 감정적 판단을 내린다. 이로 인해 일부 인간관계는 단절되거나 왜곡되며, 인간 간의 해석과 감정이 기술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알고리즘은 우리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상대방을 얼마나 자주 보여줄지도 결정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자주 생각하는 사람을 더 자주 보게 되고, 더 자주 보는 사람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노출 효과의 알고리즘적 버전으로, 관계의 방향성을 특정 인물에게 집중시키는 경향을 강화한다.
즉, 우리는 타인을 향한 감정과 친밀함조차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의 구조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데이터의 구조물 위에 재조립되고 있는 지금, 누가 중요한가에 대한 감정은 점점 우리가 아닌 시스템이 판단하게 되어가고 있다.
3. 알고리즘 속에서의 관계 피로: 감정 에너지의 분배를 조정당하는 인간
알고리즘은 인간의 관계 에너지를 재배치한다. 관계의 선택은 자율이 아니라 유도된 피로와 반복의 결과로 나타나며, 감정은 점점 플랫폼이 선택한 대상에만 쏟아지게 된다.
개인화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선호를 기반으로 타인의 콘텐츠를 우선순위에 따라 배치한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우리가 어떤 관계에 더 많은 감정 에너지를 쓰게 될지를 결정짓는다. 자주 보이는 사람, 자주 반응하게 되는 사람, 자주 내 뉴스피드에 뜨는 사람은 실제로도 ‘더 가까운 관계’로 인식된다. 반대로 드물게 보이거나 잘 노출되지 않는 관계는 자연스럽게 정서적 거리가 생긴다.
문제는 이 구조가 인간이 자율적으로 감정 에너지를 분배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데 있다. 즉, 관계의 유지 여부가 내 의도나 애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조정한 가시성과 빈도에 따라 좌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이 어떤 인간관계에 더 지쳐 있는지도, 왜 어떤 사람에게 유독 감정적으로 소진되는지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SNS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특정 친구의 게시물을 상단에 노출시키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여줄 경우,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반응과 감정을 반복하게 된다. 반복된 정서 반응은 피로로 이어지고, 피로는 관계에 대한 거리감으로 바뀐다. 반면 어떤 관계는 단순히 알고리즘에 덜 선택되었기 때문에 소외되고 단절된다. 이는 인간관계의 생태계가 플랫폼의 로직에 의해 재편되는 매우 미묘하고도 근본적인 변화다.
더 나아가, 알고리즘은 인간관계를 더 많이 상호작용하는 사람 중심으로만 구성되게 한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동일한 빈도로 유지될 수는 없다. 일방적이거나 희박한 관계일지라도, 삶에서 중요한 감정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이러한 감정의 ‘깊이’보다 ‘횟수’를 기준으로 관계를 구성하기에, 우리는 점점 더 표면적인 관계에만 감정 에너지를 쓰는 구조로 이끌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알고리즘은 인간의 관계 에너지를 재배치한다. 관계의 선택은 자율이 아니라 유도된 피로와 반복의 결과로 나타나며, 감정은 점점 플랫폼이 선택한 대상에만 쏟아지게 된다. 인간관계마저 소비 구조처럼 피로와 효율의 문제로 치환되는 시대, 알고리즘은 우리의 관계를 선택해줄 뿐 아니라, 그것에 얼마나 피곤해할지도 조율하고 있는 셈이다.